정재일 이야기

거듭되는 회귀와 함께 놈들의 울부짖음은 배경음악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동료들의 죽음만큼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었다.

그 모든 고통의 시작은, 그날이었다.

피로 물든 전장을 딛고, 마지막 하나 남은 마수의 우두머리. 그 마왕의 목을 베어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기이하게도 회귀의 기회였다.

그날 이후, 수십 번.

어떤 전략을 써도,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도, 어느 날 갑자기 열린 차원의 문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마수의 대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놈들은 언제나 내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나는 언제나 살아남아 되돌아갔다.

모든 것을 바쳐도 바뀌지 않는 운명.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죽이고, 그리고 그들이 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그 반복은 악몽이었고, 지독하리만치 정교하게 짜인 형벌이었다. 

수십 번의 회귀로 나는 깨달았다. 놈들은,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난 세계는, 초능력자와 비능력자가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비능력자들은 그들이 잘하는 일을 했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

나와 동료들의 사명.
우리는 바다를 담당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았던 괴수 레비탄을 주로 사냥했다.

끝없는 수평선 너머,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바다의 괴물들.
그러나 그들의 눈에도, 나와 내 동료들 역시 괴물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바다의 적, 해적(海敵)이라 불렀고, 그렇게 우리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갔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하늘 위에 떠오른 ‘차원의 문’.
그리고 그 문을 통해 쏟아져 나온 마수들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며칠 뒤, 연합 의회 오르도가 보내온 공문에는 대륙의 영웅들의 부고 소식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더 이상의 회귀는 없을 날이었다.

전장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아이가 보였고, 놈들이 아이를 노리고 있었다.

내 망설임 없는 움직임이 카일보다 조금 더 빨랐다.

“재일아!!”

순간이었다. 마수의 송곳니가 내 몸을 꿰뚫고, 퍼져나간 독이 온몸을 잠식했다.

카일… 너는, 이 고통을 수십 번이나 반복했던 거였구나.

마지막으로 바라본 아인의 얼굴은, 내 고통보다 더 괴로워 보였다.

그걸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또 기껍게 지옥의 문, 스틸로스의 문을 넘었다.

어렴풋이,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에서 눈을 떴을 때,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혹시, 설마—미래가 바뀐 걸까.

“어? 눈 뜬 것 같은데? 이봐요, 정신 들어요?”

그 목소리는… 분명 벨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벨… 아인…. 카일… 사이라…”

그들은 분명 나의 동료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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