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리 이야기

“제발 그가 살아 돌아오게 해 주세요.”

나는 인간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레일리님, 그 소식 들었어요?”

“무슨 소식?”

“인간들이 델파족을 이겼대요!”

“정말?! 얀님은?!

“얀 이아르크님은….”

나의 세계에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호수가 있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종족들이 얽히고설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땅의 동쪽 끝. 그곳엔 비옥한 토양과 따스한 햇살 아래 인간들이 터전을 잡았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기세가 남달랐던 이아카르 남매가 있었다.

그 반대편, 끝없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의 섬.

‘델파족’은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남은 종족이었다. 그들은 어떤 종족보다 거칠고 잔혹했다.

소수 종족을 약탈하며, 대륙 곳곳에 그 악명을 퍼뜨렸다.

은한과 델파족. 이아카르 남매와 그들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충돌이었다.

하지만 델파족의 신체와 생존력은 인간 보다 더 강했다.

이 전쟁의 끝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참혹함뿐이었다.

얀. 그를 향한 나의 짝사랑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그를 만난 순간부터였다. 소년이었던 그가 남자가 되어가는 모든 순간을 나는 언제나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누구지?”

“바, 방해해서 죄송해요!”

“…레일리?”

먼 후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내가 그를 몰래 지켜보던 시간 동안, 그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아버지!”

“오, 잘 왔다. 마침 얘기하려던 참이다. 앞으로 우리 엘라시스는 ‘한라’와 동맹을 맺기로 했다.”

인간 수명의 세 배를 살아가는 엘프는 중립을 지키며 그들과 엮일 일이 없었다. 그랬을 터였는데.

델파족이라는 골칫덩어리를 무찌르고, 드넓은 대지를 통합한 얀 이아카르와 슈 이아카르.
그들은 아버지의 신임을 받았고, 결국 대륙의 초대 은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전에 얀이 찾아와서 그러더구나.”

“네?”

“델파를 이겨내면, 너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네에?!”

나의 길고도 열렬했던 짝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우리는 모두의 축복 속에서 성대한 혼인식을 올렸다.
그리고 누구보다 행복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해, 레일리. 네가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엘프족의 축복 속, 그는 전장에서 무적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그 어떤 마법도, 그 어떤 축복도 막지 못했다. 그와 나의 시간은 너무나 차이가 났다.

“그가 너무 보고 싶어요.”

그가 내 곁을 떠나고 50번째 겨울이 지나고 있던 때였다. 나는 엘프족의 수호신, 드래곤 ‘아리온’에게 소원을 빌었다.

“어? 여긴…”

“대장! 그 여자분 눈 뜨셨습니다.”

“어, 알겠어. 알파팀에 얘기하고 올게.”

“…얀…이아카르….?”

시뮬레이션? 차원의 세계? 난 그게 뭔지 모른다.

그저, 이 세계를 위협하는 자라면 누구든, 그 대가를 치루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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